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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14 630회 0건
-끝나지 않은 노래-

‘임형사, 아까 소포 온 거 같던데…..’

‘예?’

‘소포 왔다구!, 뭔 말을 하면 한번에 들어 쳐먹는 법이 없어. 귓밥 쫌 파고 댕겨라, 아님 보청기를 달던지….으이그.’

반장의 심기가 왜 저리도 찜찌부리한지…., 아마 날씨 탓일 게다. 비도 오락가락, 게다가 어찌나 습도는 높은지….가만 있어도 등판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 걸 보면, 어디 가서 영양 탕이라도 한 그릇 때려야 속이 든든해질 계절이라 그렇지 싶었다.

‘이거, 왜 이렇게 물이 질질 새?’

내가 상자의 겉을 살피는 도중에 옆에 있던 신참 조형사가 거든다.

‘선배님, 초여름에다, 노출의 계절 아닙니까? 니년, 네년 할 것 없이, 몽조리 벗어 재끼고 다니는데, 질질 흐르는 물 쯤이야….’

‘야, 이게 무신 봉지 모듬도 아니고, 이렇게 물이 질질 나와서야…..’

나는 발신자가 없는 소포가 이상하기도 했지만, 박스의 밑으로 생선 썩은 냄새와 함께, 국물까지 배어서 배달된 사실에 저으기 못마땅한 참이었다. 누런 포장지를 찢는데도, 그 물이 손에 묻을까 봐, 조형사에게 칼을 빌려 포장지를 잘라냈다. 아주 단단하게 포장을, 그것도 두 겹으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물은 박스의 밑부분을 전부 적시고 있었다.

‘선배님, 뭔데 그렇게 냄새가 심해여? 몸보신 하시라고, 집에서 요상한 물건 올려 보내신 거 아니에여?’

‘그럼 오죽이나 좋겠냐마는, 나에게 물건 올려 보내 주실 부모님께서는 이미 안 계시네.’

‘어이쿠, 제가 모르고 그만……., 사과 드릴께요. 근데, 그 냄새는 쫌 그렇네…..’

벌써 코를 막고 있는 조형사, 반장님까지 옆에 서서 내게 배달된 박스의 개봉식을 지켜보고 계셨다. 상자가 열리고, 점점 더 진동하는 냄새는 급기야 반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하이구, 띠발, 냄새 쥑이네……이거 청국장이야, 뭬이야? 어떤 인간이 청국장을 일하는 직장으로 배달씩이나 보내구 지랄이야?’

그러나, 그건 언뜻 보기에 그렇게 보였지만, 청국장은 아니었다. 투박한 비닐에 단단히 싸여 있었건만, 이런 뜨끈한 날씨에 우송이 되는 동안, 부패에 부패를 거듭한 형상으로, 감싸진 비닐에서 조차, 물이 흥건히 베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손을 대기 싫어서, 그 비닐 뭉태기를, 칼로 그어 대면서 자르기 시작했다. 비닐이 감겨진 형태가, 꼭 권총자루를 싸 놓은 것 같았지만, 그 냄새와 국물로 인해 잡아 보질 않았으니, 그 비닐 안에 든 것이 꼭 총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헉!’

내 숨이 멎었다.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조형사도, 서 계시던 반장님의 눈에서도 불똥이 튀었다. 포장비닐을 칼로 잘라 열어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남자의 성기를 잘라서 비닐에 싸 놓은 것이 분명했기에…….

‘이…,이….,이,,,,기 뭬이야?’

조형사가 멍한 얼굴로,

‘뭐긴요, 남자 좇대가리랑, 뿡알 인뎁셔? 임 선배님, 제…제가 지금 바로 보고 있는 거져?’

나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내가 칼로 그어대면서 벗긴 포장지를 황급히 주어 올렸다.

‘임형사, 조심해서 만져, 그 안에 이걸 보낸 자슥의 지문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르잖아?’

반장이 거들었다.

‘아까도 봤는데, 발신자 주소가 없이 그냥 보통 소포로 부쳐져서 배달되어 와서리……의심이 간다, 하긴 했는데…..’

그건 예술품에 가까왔다. 이미 썩어가기 시작하는 좇대가리는 발기된 것처럼, 버떡 서 있었고, 그 밑으로 달린 고환조차 팅팅한 상태 그대로 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모양에는 신체부위에서 떼어낸 흔적이 없이 매끈한 것이 특징 이었다.

‘임형사, 모냥새가 좀 냄새가 나질 않냐?’

‘네, 부패된 정도로 봐서 그렇긴 한데요?’

‘뒤진 다음에도 저렇게 팅팅한 좇대가리가 얼마나 될까?’

‘글쎄요…..’

이런 저런 가정과 잡다한 생각을 하는데,

‘우선 포장지에 찍힌 우체국 소인을 추적해서 어디에서, 누가, 언제 부쳤는지 부터 알아내. 그리고, 조형사는 고대로 들고 임형사랑 국과수에 긴급으로 넘기고 와, 알았지? 빨리들 움직여, 알았어? 느려 터져가지고는…..그리고, 임형사는 아울러서 요사이 보고된 변사자 내역 중에서 성기가 훼손된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고, 참, 그리고, 변태 성욕이랑, 사체부위랑 관련이 될만한 전과자 명단, 좌악 읊어놔, 알아들어? 왜 또 멀뚱하게 서있어? 귓밥 파주리?’

반장은 지가 하는 일 아니라고, 버릇처럼 좌악 주어 넘겼다. 하긴, 나라도 저렇게 지시 했을 것은 당연한데, 태클을 걸어봐야, 나만 좇나리 깨질 것은 뻔한 이치고…..

‘아니, 선배님…저도 살다 살다, 이런 물건은 첨 봐요. 어떻게 좇대가리를 이렇게 만들어, 그것도 형사들에게 직접 보낼 수 있죠?’

‘씨부럴 쇄끼들,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와도 유만 부동이쥐, 어따 대고, 폼 나게 개지랄 들이야? 아니, 이게 무신 영화냐? 하여튼 그런 생각하고 이런 짓 저질러 대는 쇄끼들, 대가리는 볼 것도 없이 빠셔 버려야 쥐, 재판은 무신 얼어 뒤질 놈의 재판? 돈 이랑, 시간 아깝게 써 바쳐서 뭘 하남?’

나와 조형사는 사건의 중대성 때문에 국과수까지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찜찜하게 상자를 대강대강 다시 포장해서 들고 가긴 했지만, 가는 도중, 차 안에 가득 차오는 살 썩는 냄새 때문에 우리는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유리창을 모두 열어 놓은 채, 서울의 좇 같은 매연을 몽조리 들이마시며, 움직이고 있었다.

‘하이구, 이렇게 직접들 오시고, 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려나?’

그러나, 평소와 다르게 상자를 들고 있는 우리 두 사람의 표정에 비친 심상찮은 기운 때문인지, 신 박사는 이내 농지거리를 멈췄다.

‘왠 일들이래? 그 똥 씹은 표정 하고는?’

‘일이 좀 커요!’

‘일이 크다니?’

‘보면서 얘기 하시죠. 바쁘시져?’

‘아니, 바빠도 그렇지, 그 손에 든 건 뭐야?’

나와 조형사, 그리고, 신박사는 그 상자를 들고, 검시실로 들어갔다. 상자를 펴기 전에 신박사는 녹화 준비를 하고, 캠을 켰다. 우선 종이박스와 포장지, 비닐을 따로 분리해서, 특수 비닐에 차례로 담아 증거물로 분류하고 나서 그 권총처럼 요상하게 생겨 먹은 물건을 검시대의 중앙에 놓고, 세 사람이 그 주위를 둘러쳤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저렇게 엽기적인 행위를 하는 치들의 정신상태로 본다면, 아마 박스나, 비닐, 포장지 어디에서고 지문 나부랭이나 증거가 될만한 털 오라기 하나도 나오지 않을 듯싶네만…..’

‘그건 왜 그렇죠?’

신참 조형사가 물었다.

‘대개 그렇지만, 저런 사체의 일부를 떡 하니, 경찰에게 들려 보낼 정도의 작자라면, 자신의 행위를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심리를 갖고 있는 거지. 너희 같이 띨빵한 인간들이 나를 잡을 수나 있겠냐는 그런 우월감에 빠져 있다고나 할까?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그걸 들어 줄 곳은 마땅칠 않고, 그래서 이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심정을 하소연 하거나….뭐 그런 것일 테지…’

‘박사님, 근데 왜 이렇게 얼룩덜룩 하져?’

‘글쎄, 나도 그게 의문 인데 말이야. 좀 가까이 확대 좀 해 볼까?’

미세한 부분을 살펴 보기 위한 확대경이 그 물건의 위로 옮겨졌고, 가뜩이나 흉측한 모습에다, 냄새가 그 확대경을 통해서 증폭되는 느낌마저 가져다 주고 있었다.

‘이거 보통 놈이 아닌데?’

‘왜여?’

‘자 이쪽을 쫌 잘 봐. 모두 부패가 심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이 좇대가리는 한 사람 것이 아니야. 더 정확히 말하자면 표피가 말이지.’

‘네?’

난 화들짝 놀라서 확대경에 얼굴을 들이댔다. 부패되는 정도가 심해서 구분이 가질 않았을 뿐이지,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것은 박사님의 말씀대로 네 명의 좇대가리와 불알 껍질을 홀랑 벗겨서 그 중에 4분의 1만을 정확하게 재단하듯이 끊어 내서, 럭비공 껍질 이어놓듯이, 서로 박음질을 해 놓은 것이었다. 언뜻 보면 한 사람의 좇처럼 보였어도 그 좇은 이미 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증거물 이었다.

‘아직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사실, 남성의 성기는 별로 그 안에 담고 있는 게 없어. 좇대가리야, 그 안의 구조가 쑤세미 같은 해면체여서, 발기를 유도했던 혈액이 빠져 나가고 나면 물렁살뿐이고, 고환이야, 불알 빼면 남는 게 뭐가 있겠어? 부패 속도도 남 못지 않게 빠른데……근데 이상해. 아까 검사를 시작하기 전에 무게를 달아 보니까 그게 장난이 아니었거덩? 꼭 뭐가 안에 든 거 같아.’

‘뭐가 들어 있다뇨?’

‘운동회 때 기억나나? 모래 주머니라고 만든 적 있지? 못쓰는 천 조작 안에 모래를 빵빵 하게 넣어서리, 마구 집어 던지던 그런 거…..’

‘그런데여?’

‘아무래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가 있는 거 같아. 뭘까?’

‘저….폭탄이 아닐까여?’

신참 조형사의 발언은 언제나 기상천외했다.

‘폭탄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물 질질 흐르는데 그 안에 방수로 만든 사제폭탄? 닝기리, 대가리를 써도 그것 밖에 안되지? 그러니 경찰이 언제나 욕 먹고 다니는 거야, 너 같은 또라이들 땜시….’

‘아니면 아니지….’

‘아니, 그럴 수도 있지. 가능성은 충분하지, 뭘!. 경찰에 앙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일을 저지르고 있다면 불가능한 가정도 아니라고 봐. 그럼 절개하기 전에 엑스레이 부텀 찍짜구. 에휴, 아까 시켜 놓은 군만두, 먹고 할 껄…에이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구, 찍는 동안, 먹어야 쓰겄네……’

인간이 세상 미물들 중에서 제일 독종이란 말은 이럴 때 해야 하는 것 같았다. 나와 조형사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지경인데, 그 앞에서 장갑을 벗어 던지고, 식어 빠진 군만두를 꾸역꾸역 먹어대는 모습이, 우리 두 사람의 토악질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기에 말이다. 그저 냄새는 냄새일 뿐이고, 식욕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세상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이건 뭐 올드 보이도 아니고 설랑, 징하다, 징해…..

‘자네도 하나 들지?’

그 소리에 기어이 조형사는 밖으로 튀어 나갔다. 나는 받아 들기는 했어도 먹진 못했다.

‘어떻습니까?’

‘글쎄, 엑스레이에 나온 이게 뭔지 까봐야 알겠는데? 고환의 구조랑은 영판 틀리거든?’

‘그럼 까 보죠, 뭐.’

‘그럴까?’

신박사는 다시 비누로 손에 묻은 군만두의 기름기를 벗기고, 장갑을 다시 꼈다. 조심스레 살이 붙은 이음매 부분에 메스를 들이대자, 그 사이로 고름 같은 물이 비질대면서 흘러 나왔다. 난 그 모습이 밤 사이, 해변가의 모래 사장을 파 재끼고 알을 까는 바다 거북의 생식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지….’

‘뭐가요?’

‘이렇게 엽기적인 놈은 처음 봐. 이렇게 썩어서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테지만, 이게 무언지 아나? 안구야. 사람의 눈알 말이야. 좇대랑, 불알이 미어 터질 것처럼 보인 게 다름아닌 네 사람 분의 눈알을 이 좇껍질 안에 쑤셔 집어 넣었으니 어련 하겠나 말이야.’

바람 빠진 돼지 오줌보 같은 살거죽을 뒤로 하고, 검시대에 피고름을 질질 흘려 대면서 쏟아져 나온 눈알들……나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사람하고는 뭘, 이따우 것을 가지고 유난은?’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나는 진정이 되었다. 다시 검시실로 들어가긴 했지만, 그 안은 정말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신 박사의 얘기로는 눈은 좇대가리 보다 먼저 적출되었던 듯싶고, 그래서 그런지, 좇대의 피부보다 더 부패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이건 예술이네…..여기 이음새를 봐. 네 사람 분의 좇대가리 껍데기를 좇 끝부터 불알 밑둥까지 정확하게 시침할 여유까지 부려가면서 벗겨낸 다음에, 손으로 꼼꼼하게 안으로 바느질을 해 들어간 폼이……, 글쎄, 의사가 아닐까? 그래, 의사가 아니고서는 힘든 부분이 아닐 수가 없어. 살이 틀어지지 않도록 귀두의 선상을 기가 막히게 맞춘 거 하며, 오줌구멍도 묘하게 막아놓은 게, 기가 막히는 구만. 솜씨가 일천한 외과나 비뇨기과 전문의가 아니면 부릴 수 없는 손 기술의 극치야. 이쯤 하면 수사 선상에 오를 인물들의 폭이 어느 정도 좁혀지지 않을까? 근데 이상한 것은 이 실 말인데…..’

‘실 이라녀?’

‘대개 요즈음은 그 부식사(봉합시에 사용하는 실, 살이 아물면서 저절로 부식됨)도 사용하질 않고, 스테이플로 콱콱 찍어 버리기 예사거든? 어떤 부위야 당연히 실로 봉합해야 하지만, 말이야, 명색이 의사 양반이고, 이런 일을 저지를 장소는 진찰실이나 수술실 밖에 없었을 텐데, 이런 일을 저지르려고, 일반 실을 이렇게 별도로 소지하고 들어가서 봉합을 했다? 이거이 사실, 좀 이해가 안되네만…..’

‘그건 무슨 실인데여?’

‘성분 분석을 해 봐야 알겠지만, 의료용 실은 아닌 게 분명해. 안구랑, 네 쪽으로 이어진 좇껍질은 DNA 검사를 해서 각각 분류해 놓음세. 이럴 땐 말이야.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유전자 지도를 태어나면서 출생증명서처럼 데이터 베이스 해놓으면 손 쉽게 범인이든, 피해자든 손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에이 박사님도..그거야 범죄 유발도가 높은, 유전자 보유자를 사전에 검색하려는 이스라엘 정부의 좇겉은 의도 때문 아닙니까? 사생활 침해도 정도가 있지….’

‘암튼, 그래 보고 싶은 나의 작은 바램이 있다네. 이 바닥에서 하도, 밀고 땡기는 씨름 질이 진력이 나서 말이지. 암튼, 이번 사건은 문제가 심각할 듯싶어. 섣불리 다가섰다가는 좇되기 십상일 걸세. 그건 그렇고 소 반장은 아직도 소 잡고 계시나? 이제 백정질 그만 허고, 독방 쓸 때도 지났구만, 어째 그리 입신양명이 늦은 게야? 가서 안부나 전하시게.’

‘예썰! 잘 좀 부탁 드립니다.’

난 도망치듯이 검시실을 빠져 나왔다. 그 때까지 조형사는 밖에서 헛구역질을 멈추지 못하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고….

‘어여 가자. 아까 다 토해서 나올 것도 없잖아? 너 점심에 자장면 쳐먹었지? 그러게 작작 쫌 드시져, 예? 다음부터 그 놈의 군만두 싸비스 입만 뻥끗 하기만 해 봐. 아주 요절을 내 놓을 테니, 알어?’

우리는 상자를 이미 건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옷 냄새를 킁킁거려가며, 또 다시 차의 창문을 활짝 열어 재끼고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냄새와 엽기적인 장면은 사체의 전부를 목도한 것 보다 더 강하게 뇌리를 누르는 그 무엇 인가가 있었다.

‘근데 말이야, 조형사…..왜 아직도 속이 거북해?’

‘괜찮아여……너무 충격적이라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여. 왜여, 선배님?’

‘무슨 이유에서 그런 물건을 만들어 우리에게 보낸 걸까?’

‘하이고, 제가 그걸 알고 있으면, 이 자리에 있습니까? 얼릉 자리 펴고, 미아리에 나가 앉았지?’

‘동기라,….동기….이것도 어떻게 보면 살인이 선행된 범죄행위인데, 좀 이상하질 않나 말이야.’

‘뭐가여? 사람 죽여서 저 지경을 만드는 놈들이 동기고 뭐고가 있겠어여?’

‘내가 범인 이었다 치자 말이쥐. 그럼 네 사람을 어디론가 자신의 범행 장소로 끌고 갔을 테고, 네 사람씩이나 되는 번잡한 상황을 지금까지 들키질 않고 숨길 수 있었다는 게, 제일 수상 하거든, 안 그래? 한 사람도 아닌, 네 사람 씩이나…..’

‘신고정신 티미한 배달의 기수, 한민족 아닙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이, 하루에도 정신 없이 쏟아지는 실종자 신고, 보면 모르세여? 그깟 네 사람쯤 없어졌다고 세상이 동강 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없어져 버렸으면 싶은 피붙이라면 옳다구나 잘됐다 싶은 생각에, 신고할 꿈도 꾸질 않았겠져. 대개 연쇄 살인범들은 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난 대상만을 물색한다고 그러던데, 아닌가여?’

‘꼭 그렇지만은 않지. 살해 대상자는 자신의 이념과 상반되거나, 혹은 자신의 이데아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연계성을 갖고 있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연쇄 살인범이 계속해서 창녀들을 살해하고 발가벗겨서는, 초등학교 앞에 떡 하니 갖다 버렸던 엽기적인 사건이 있었지. 범인은 자라오는 동안, 먹고 살 방도로 창녀의 길을 걷고 있던 지 에미가, 너무 증오스러운 나머지, 그렇게 살해 해서는 초등학교 앞에 유기 했다는 거야.’

‘근데, 초등학교와 무신 관계가 있는데여?’

‘그 범인이 에미의 직업을 정확히 파악하게 된 것이 초등학교 였다지 아마?, 그래서,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도 여자들이 창녀질 이란 행위로 살아가게 되면, 이런 꼴이 되고 만다는 교훈을 초등학생들에게 몸소 알려주고 싶었다나? 거기다가 옷을 모두 벗겨 놓았던 것은 수치심의 표현을 그런 식으로 한 것이었고…….’

‘그르네!......근데여, 선배님, 이 사건도 어떻게 보면 연쇄살인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여? 이미 네 사람의 신체에서 성기가 적출된 셈이고, 안구까지 뽑힌 채로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 말이져. 이미 사망했다고 치면, 범인은 네 사람을 차례로 죽인 것이고, 그 물건은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느냐 이거져. 하고 많은 부위 중에 성기 부분을 택한 것 하며, 성기 안에 눈알을 집어 넣었다는 것도 복합적인 의미가 아닐까 해서여.’

‘제법 그럴싸 한 부분까지 나아 가는 구만. 나도 얼핏 그런 생각이 들긴 했쥐……참 아까 우체국 소인 조사하라고 반장님이 그러셨는데, 전화 쫌 때려봐. 어딘지? 이렇게 움직이는 바에 그 곳까지 돌아 들어 가자구.’

나와 조형사는 소인이 찍혀 있던 우체국을 향했다. 소포를 접수한 날의 근무자에 대해서 탐문을 해 보았지만, 워낙 불특정 다수가 왕래하는 곳이고 보니,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을 리 없었고, 정확히 그 물건을 그곳에서 처리한 기억조차 분명한 직원이 없었다. 다만 접수대장에 적혀있는 것이 고작 이었고, 발신자의 주소가 없어서 그냥 형식상 주소를 물었다는 것만 알아낼 수 있었다.

‘어떡하져? 대장에 적혀 있던 그 주소랑, 핸폰 번호도 모두 짜가 던데여 뭘!’

‘조형사! 요즘 세상에 빠구리 껀으로 만날 년 놈들 이외에, 지 핸폰 번호 쉽사리 덜렁 날리는 인간들 봤냐? 섹스 앞에서만 정직해지는 인간들 이라니, 나 원 참!’

‘혹시, 우표에 침을 칠하지 않았을까여? 잘만하면, 소량의 타액으로도 DNA검출이 용이할 수도 있잖아여? 범인도 없이 덜렁 유전자 정보만 들고 있기는 쫌 그림이 그래도….’

‘내가 혹시 잊을 수도 있으니, 신박사 님께 우표에서 유전자 검출이 될만한 껀수가 있는지, 전화 드리고……가끔 괜찮은 구석으로 겐또가 돌아가는 걸 보면, 영 또라이는 아닌데…..’

‘외국친구들은 저 보고 체질이라고 그러던데, 선배님만 유독 저보고 또라이 라고 하신다니깐여?’

‘하여간 외국에서 살다 온 치들은 다 그런가? 그 나물에 그 밥 이라구, 친구 자슥들도 너처럼 취향 독특한가 부지? 또라이끼리 모여설라무네?’

‘으이그,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여 잔소리 말고 앞장이나 서.’

다시 돌아왔을 때, 반장은 우리들과 남아있는 인원을 회의실로 불렀다.

‘임형사, 조형사, 나갔다 온 껀은 어떻게 됐어?’

‘그게 말입니다……’

나는 신박사의 의견까지 조심스럽게 건네면서, 아무런 수확 없이 장황하게 휘돌다 온 상황에 떨어질 불호령을 피해 보려고, 되도록 차근차근, 얘기들을 엿가락 늘이듯이, 죽죽 늘어뜨려 널어 놓았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잡소리 집어 치우라고 했을 반장님께서 오늘은, 나의 이바구를 넘어선, 썰 조차 잠자코 듣고만 계셨다.

‘다들 잘 들어. 아까 봐서 알겠지만, 범인은 보통 놈이 아닌 것 같다 이 말이지. 그 대담성도 그러 하려니와, 우리에게 소포를 먼저 보낸 것은 자기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과 알리바이를 착실히 다져 놓은 후에, 질러댄 걸로 보이거덩? 아직까지 아무 것도 손에 쥔 것도 없고, 수사 선상에 올려 놓을 인물 하나도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서 말이야. 이 사건은 특별히 보안에 붙이라는 상부의 지시야. 다들 알겠지? 용의자 대상선이 물 위로 떠오를 때까지 입조심들 하고……돌아 가면서 범행동기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한번 들어봤으면 싶은데……’

모두들 원한, 혹은 치정에 얽힌 계획된 범죄 살해 혹은 복수극이라고 피력했고, 나도 동조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어째서 꽁꽁 숨겨 두어도 모자랄 그런 범죄 행위의 증거물을 우리들에게 보내 왔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저는 의견이 쫌 다른데여?’

조형사가 또 나섰다. 띠발,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이나 갈 텐데, 또 왜 저런다지?

‘뭔데, 한번 읊어 봐. 들어나 보게.’

반장도 별로 기대하질 않는 눈빛이기는 했다.

‘제 생각에는 의도된 살인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동기는 사뭇 다르다고 보거던여? 이를테면, 그 증거물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알리자는, 더 쉽게 얘기 하자면 우리들의 수사력으로 그 증거물에 대한 따라잡기를 하다 보면, 자연히 범인이 의도하는 쌍나팔 쪽으로 입이 가게 된다는…….. 뭐 그런 야그져.’

‘쌍나팔은 또 뭐래?’

‘쌍나팔 불어댄다고 그러잖아여? 범인이 의도하는 것은 다름아닌, 그 쌍나팔을 제발 불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서 살인을 했다 이겁니다. 제 말은!’

‘그래서?’

‘잘못하면 우리가 범인의 의도대로 쌍나팔을 아무 생각 없이 불어주고 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범인은 사라지고, 우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모냥새가 된다는, 그러니까 설라무네…… 좋으신 옛 선조의 말씀을 되새기면퐈─?br />
‘이런 니기미 씨부럴….뭔 소린지, 잘 나간다 했드니만, 꼭 끝을 못 맺어요. 똥 싸고 밑도 않닦고 빤쭈 입을 넘……물은 내가 잘못이지…..헷소리들 그만 허고, 어여 나가들 봐. 임형사는 나 좀 보고…..’

모두 나가고 회의실에는 나와 반장만이 남았다. 서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자네 생각은 어때? 내가 제일 이해가 가질 않았던 건, 어째서 자네의 이름으로 소포가 왔냐 하는 점이지.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저도 아리까리 한게요. 사건으로 만난 적이 있는 게 아니고서, 저를 이렇게 꼭 집어서 물건을 보낸다고 하면, 저와 적어도 한번은 안면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도저히 집히는 곳이 없단 말이져.’

‘혹시 주변에 원한 살 만한 짓 한 거 없어? 참, 묻는 내가 그르지. 형사한테 분풀이 하고 싶은 인간이 한 둘이야? 그건 그렇고, 임형사는 국과수 검사 결과에 달라 붙어 주고, 결과가 나오는 데로 실종자 명단을 대조해서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한번 꼽아 봐. 그렇게라도 해야지, 이거야 원. 접근할 도리가 없잖아?’

‘딸깍’

‘뉘기야?’

‘저, 임형사님, 전화 왔는데여?’

‘어딘데?’

‘국과수 신박사 님인데여?’

‘알았어. 이 쪽으로 좀 돌려 줘.’

나와 반장은 신박사와 인터폰 상태로 대화하기로 했다.

‘안녕하쇼? 짝퉁?’

‘너 뉘기야? 소반장? 하이구, 요런 백정 나부랭이가 어디서 감히?’

‘야, 아닌 막말로 돈이라구는 좇도 못 버는, 짝퉁 의사 나부랭이 주제비로, 가다에 힘 주기는? 왠 일이야?’

‘임형사는 어디 가구?’

‘저 옆에 있습니다.’

‘하이구, 꼬라지에 스피커 폰으로? 암튼 그건 됐구.’

‘용건이 뭐냐구?’

‘아까 낮에 들고 온 물건을 잘 살펴 봤는데,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이 드러나서 말이야.’

‘미심쩍다니?’

‘그때는 의심 가능한 대상이 집도가 가능한 의사 부류가 아닌가 싶었는데, 좇껍질의 이음매를 확대해서 보니깐 말이야. 메스가 아니더란 말이지.’

‘그럼?’

‘그냥 보통 칼이야. 그것도 문방구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 사람아, 장사 완투 데이 하남? 질질 흐르는 이물질 검사하는데 보니깐, 특이 성분이 나오질 않겠나 말이야. 뭐 전문 화학식 명으로 말해 줘야, 백정 대갈빡에 들어가지도 않을 꺼고, 암튼 그냥 그래.’

‘그냥 그렇다니? 말을 꺼냈으면 끝을 맺어야쥐?’

‘쉽게 말하면 그 안에서 나온 부패유동물질을 빛에 비추어 보는데, 뭔가 얼룩대서 성분 검사를 했는데, 다름 아닌 기름이었더라 이 말이지. 그것도 공업용 기름 말이야. 왜 있잖아? 면도칼 새로 사고 나면 발라져 있는 그 기름…..아마 범인이 거기까지는 신경을 못 쓴 거 같아. 절단 부위의 확대 사진을 스캐닝 해서 지금 살펴보고 있는데, 문방구에서 구입 가능한 면도칼로 시각을 좁혀보면, 아무래도 D사 제품의 칼 같아. 잘려진 단면의 비스듬한 각도가 그 제품 같거덩?’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전화 때린 걸 보면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안 그래?’

‘아효, 대갈빡 후진 백정 자슥이, 눈치 하나는 백단 일쎄?’

‘너 짝퉁, 뒤진다?’

‘히히….다른 게 아니고, 획기적인 부분이 드러나서 말이야. 범인이 그 좇껍질을 자르고, 꿰매고 손보던 곳이 어딘지 알았단 말씀이야.’

‘어떻게?’

‘대개 내용물을 긁어내고 남은 껍질을 올려 놓고 자를 때, 바닥에 무얼 받쳐 놓질 않으면 말이지, 그 너덜너덜한 살가죽이 날카로운 칼날과 함께 맞물리면서 잘라질 때 바닥 면에 칼날과 함께 미세한 부분을 물고 들어 가거덩? 자네 어렸을 적에 책받침 받친 채로, 종이 자를 때, 면도칼로 그어 봤으면 당삼 잘 알거야. 책받침 표면에 칼자죽이 선명하게 나게 되는 거 말이야. 그 상황에서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자르고자 했던 대상물에도, 밑에 받쳤던 표면에도, 서로의 일부 조각들을 인심 쓰듯이, 교환하게 된다 이 말씀이야.’

‘사설은 빼고, 그게 뭔데?’

‘나무 탁자야. 그것도 꽤 오래 된 걸로, 지금 그 미세한 조각을 통해서 수목의 종류에 대한 분석을 하려고 샘플을 외부로 보냈으니까, 어떤 재질의 나무인지는 금방 밝혀 질걸세. 나, 디게 똑똑하지?’

‘짝퉁이 어련 할라구?’

전화를 끊고서 반장은 혼잣말을 되뇌였다.

‘일반 면도칼, 보통 실, 나무 받침……무슨 연관이 있을꼬?’

나는 회의실을 나오면서, 산적해 있는 기존 업무와 보고서가 생각나고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건, 수사, 영장심사, 체포작전…..그리고 이어지는 서류 작업…….조금 진저리가 나고 있었다. 현재로 봐서는 국과수로 보낸 증거물에서 채취되는 정보만이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었다. 포장지의 재질 분석이 나오면 광범위 하기는 해도, 종이의 PH값을 추적한다면, 어렵지 않게 제지공장과 돌아다니는 경로가 드러날 것이고, 그에 따른 보강수사로 어쩌면 큼직한 덩어리가 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아울러 들고 있었다.

‘식사나 하러 가시져?’

‘일 없네, 조형사나 먹고 와. 나가면서 설렁탕이나 하나 시켜주고 가든가……’

‘선배 위장은 밸도 없나 봐. 자장면 아님, 설렁탕……두 가지 메뉴로 세월을 나시니, 참……’

나는 맨 처음 국과수에서 신박사를 통해 좁혀 들어갈 줄 알았던 수사 대상이, 증거물의 진위가 하나하나 드러남에 따라 방향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범인이 내두르는 고무줄에 정신 없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는 그런 찝찝한 뒷맛, 뭐 그런 거였다.

‘좋은 아침!’

‘좋긴 뭐가 좋아? 임형사! 지난 번 보고서 올리라던 신당동 분식집 패싸움 사건, 어떻게 됐어? 교육청에서 악악 대는 거 알어, 몰러?….요즈음 학원 내외에 일진회다 뭐다 해서 신경 바짝 곤두세우고 있는데,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그 일 누가 대신 해준다디? 사람이 멀티 플레이어 기질이 있어야쥐 말이야. 하나 시키면, 달랑 그것 밖에 헐 쭐을 몰라. 다른 것들도 다 마찬가지야, 알어? 한번에 한가지씩만 헐 거 같으면, 누가 못하나?’

‘아니, 아침부터 왜 저렇게 부었대?’

‘그 좇대가리 사건이 왜 진척이 없느냐고 위에서 된통 한 소리 들으셨대요. 허긴, 그 물건이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별다른 보고네, 진전 사항이 없으니, 위에서 그럴 만도 허죠. 선배, 몸조심 해요. 걸리면 바로 날라갈 분우구 아니우?’

나는 국과수에 간다고 보고하고는, 조형사까지 살려 주는 셈치고, 같이 꿰차고 반을 나왔다.

‘근데, 선배…… 만일에 말이에여.’

‘응.’

‘유전자 감식으로 대강의 연령대가 밝혀 졌다손 쳐도, 유골도 없고, 그렇다고 별다른 증거물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종자 만을 갖고 들이대는 건, 너무 무모한 발상, 아닌가여?’

‘지금으로서야 그 짓밖에 더 해 보겠냐?’

‘허긴…….’

우리 두 사람은 국과수로 향하고 있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아무런 결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그 다음이 더 걱정이 되고 있었다.

‘어서들 와. 점심들은 먹었나? 아님, 나랑 같이 하고……’

‘아휴, 별말씀을 요? 저희들 오늘은 아예 빈속으로 왔습죠. 토해봐도 나올 것은 눈물밖에 없습니다.’

‘잘들 왔어. 내 할 얘기도 많고……보고해야 될 사항도 많아서 말이야. 어서들 앉지.’

‘그 말씀 하시던 목재 재질 분석은 끝난 겁니까?’

‘그럼…..여러모로 많은 걸 시사하게 될 쭐은 나도 예상하질 못했지만 말이야.’

‘시사 하다뇨?’

‘조사결과 부텀 들어보게. 그 나무는 흑단이라고 하는 재질이야. 자네 들어봤나? 나무 중에서 흔치 않게 물에도 가라앉는다는 그 종류 말일쎄.’

‘예, 어디선가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그런 나무로 보통 책상 같은 것을 만듭니까?’

‘그게 그러니까 다양한 가능성을 안고는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볼 수 있지. 그 나무로는 예전부터 혼인에 쓰이는 함이나, 사주단자, 보석함, 진신 사리를 담는 사리함 같은 귀한 곳에 쓰여졌었다고 하더라구.’

‘함 위에다 올려놓고, 좇대가리 껍질 짜깁기요? 그거 쫌 쌩뚱맞지 않나?’

‘하여간 조 오두방정 아가리 하고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어른들 얘기 허시는데….’

조형사의 말참견에 신박사는 웃음만 지을 뿐이셨다.

‘다른 가능성은 이런 게 있지.’

‘다른 가능성이라뇨?’

‘그 무게와 단단한 재질로 말미암아, 가끔 가정용 수동 재봉틀을 고정하는 틀로 쓰인 적도 있다는 구만….’

‘재봉틀이요?’

난 머리 속이 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면도칼과 실, 공업용 기름, 나무틀…그것은 바로 구식 재봉틀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제야 감이 오나? 범인은 모종의 장소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뒤에, 성기를 적출해서는, 본인의 장소로 와서, 그것도 재봉틀의 흑단 위에 올려 놓고, 좇껍질의 짜깁기를 한 거라네. 난 맨 처음에 공업용 기름의 성분이 면도날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만일 우리의 추측이 맞다면, 범인은 기가 막힌 솜씨로 재봉틀을 놀릴 줄 아는 놈이라는 거지. 어쩐지, 껍질의 이음매가 매끄럽고, 박음질이 촘촘해서 솜씨가 대단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재봉틀만이 낼 수 있는 박음질 이었다, 이거야. 노후된 재봉틀을 굳이 사용해서 박음질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뭘까? 컴퓨터 칩으로 프로그래밍까지 되어서, 기계 자수에서부터 못 만드는 무늬가 없는, 요즈음 신식 재봉틀을 놔두고, 공업용 기름마저도 뚝뚝 떨어지는 그런 구닥다리 재봉틀로 사체를, 그것도 성기부위와 눈깔들로 꾸며진 참혹한 유희라……뭔가 냄새가 나질 않나?’

‘뭔 냄새여? 박사님, 또 군만두 드시려구여?’

‘이런, 자네 뭐 하는 사람이야? 열 받은 사람, 뚜껑 열리게 해도 유분수지…그런 소리 할거면, 나가서 담배나 태고 들어오게.’

신박사의 나무람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가는 조형사……하여튼….쯧쯧….

‘요즈음 젊은 것들은 흉내도 서투르다니깐?’

‘그렇죠, 뭐.’

신박사는 가끔 우리들의 살아가는 것이 이제까지 있어왔던 삶의 굴레를 흉내내기 바쁜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곤 했다. 누구는 의사 흉내, 누구는 장사치 흉내, 누구는 회사원 흉내……그렇게 어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누가 더 그 흉내를 멋들어지게, 진짜처럼 해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 아니냐는 꽤나 철학적인 관점…….나도 그 의견에는 일면, 동조하는 구석이 없진 않았다.

‘박사님, 유전자 감식결과는 나왔는지요?’

‘짝 맞추기 였지, 뭐……만일 그것도 무신 퍼즐처럼, 요 껍질의 주인양반 눈까리가 그 좇대가리 속에 없었네, 하면 돌아버렸을 텐데, 다행히 껍질의 임자와 안구는 일치하고 있었어. 나이는 그러니까, 가설라무네, 부패 정도가 심해서 정확치는 않지만, 일반적인 표피의 노화 속도를 감안했을 때, 현재 나이로 65세에서 75세 정도가 아닌가 싶네만……또 하나, 의문스러운 것은 어째서 피해자의 나이가 비슷한 연령대 이면서, 그것도 고령이었냐 라는 거지. 이건 단순 목적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원한이 깊은 상황 속에서 빚어진 치밀하고 계획적인 보복형 살인이 아닐까 싶네만…..뭐..그거야 자네들 소관이고…..난 검사만 해주면 되는데, 나도 주책 이지… 꼭 지가 무신사립탐정처럼 괜시리 흥분해 가지고 설랑은……’

‘아닙니다. 박사님의 추리나 소견이 저희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네는 또 실종자 명단에서 비슷한 연령대를 찾을 거구…’

‘뭐, 하는 짓이 그렇죠.’

‘그런데 말이야. 지금 현재 그 정도의 나이면, 치매나, 지병 같은 걸로 이미 죽었을 수도 있고, 치매의 경우에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가출 같은 것으로 실종신고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수사범위가 너무 확대되는 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하지 않고 넋을 빼고 있을 수도 없질 않습니까?’

‘허긴 그렇지….근데, 요 젊은 인간은 담배를 맹글어 피우고 오나, 왜 이렇게 더뎌?’

‘들어오고 싶겠어여? 대낮에도 들어오기 음침해서 저도 머리 칼이 곤두서는데…..’

‘암튼 이 보고서 챙겨가고, 더 중요한 것이 나오면 내 알려줌세, 소 백정한테 일간 술이나 한잔 사라고 그랴, 알았지?’

‘예, 그럼, 부탁 드리겠습니다.’

밖으로 나와 암만 주위를 둘러 봐도 조형사는 보이질 않았다. 왠 일이냐 싶어, 차로 향해 가는데, 차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의자도 뒤로 재껴버린 자세로, 곤한 잠에 빠져 있는 조 형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침 까정 흘리는 저 장관!…….어휴, 게다가 후루룩 다시 빨아 자시기도 하잖어? 드러라!

‘뭐 하니?’

나는 큰 소리를 내며, 차 문을 열었다.

‘오셨어여? 아휴, 잘 잤네…..잠이 보약 이라니깐…..그래, 무슨 좋은 말씀, 듣고 오셨어여?’

‘거럼, 이 보고서 안에 핵심이 담겨 있쥐. 반장님께 어서 돌아가자.’

나는 범인의 윤곽조차 모르면서도 범행 순간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기쁨에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너 이 새끼, 죽었쓰………

‘그래? 오랜만에 짝퉁이 한 껀 올렸구만….’

반장도 나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일간 흡족한 것 같았다. 아침의 시푸르둥둥 했던 서슬은 온데간데 없고, 또다시 이리저리 바쁜 반장의 뒷모습….조금은 화가 풀린 게다.

‘임형사, 조형사, 나가자. 내가 영양탕 맛나게 하는데 뚫어 놨는데, 가자. 내가 쏘지 뭐.’

‘정말여?’

‘조형사, 넌 임형사 가방 모찌 하면서, 잠만 디리 퍼자고 댕긴다는데, 창피스럽지도 않냐?’

영양탕 집에서 우리 세 사람은 대낮이긴 했어도 소주를 깠다. 마지막 코스에 중앙청(개의 거시기 고기를 일컫는 말) 고기를 썰어 넣고, 들깨 가루를 듬뿍 얹어서 비벼주는 밥마저 깨끗이 비우고 나니, 온 몸에 땀이 후줄끈하게 배고 있었다. 마침 식당의 방안에 켜 놓은 유선 방송에서는 패션쇼가 한창 이었다. 미끈한 몸의 여자들이 귀신딱지 같이 화장한 얼굴에, 쌍팔년도 저고리와 몸빼 같은 차림으로 인해, 덜렁대는 젖이 밑에 앉아 구경하는 객석에서는 보일 듯도 한, 변형된 이상한 복장으로 무대를 돌고, 여기저기 에서는 후레쉬가 터져대고……

‘저걸 옷이라고 꿰차고 나왔으니, 저런 좇겉은 옷, 만드는 쉐이는 도대체 뉘기야?..... 오? 저기 나왔다! 하여튼 그것도 디자이너라고…….저, 봐라….나이 살이나 쳐 먹었으면, 곱게나 늙을 것이지……머리 꼬라지 하고는……파숑 하는 것들은 전부 저런가? 으히그, 꼴 사나워서리……임형사, 내일부터 바빠질 거야. 실종자 관련 자료를 대조해가며, 뒤지려면, 왠간히 진이 빠질 텐데, 내가 오늘 격려의 의미로 한 턱 쏜 거, 잊지 마라 말이야.’

‘저.. 반장님…..내일 전 월차 쫌…….’

‘왜?’

‘친척 되시는 분이 외국으로 아주 살러 가시거덩요.’

‘근데, 니가 왜 나서고 난리야?’

‘저 한테는 한 분 밖에 안 계신 분이라….’

‘보내주시죠? 저 혼자 슬슬 시작해도 되는 일인데요, 뭐….’

‘으이그, 요즈음 젊은 것들은 찾아 먹을 껀수는 귀신같이 찾아 먹는다니깐! 우리야 어디 월차 얘기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올 수나 있었나? 집에만 보내줘도 감지덕지 였는데, 세상 참……’

‘젊어서 그렇죠. 외국물 꽤나 먹었지만, 조형사 만한 후배도 없죠.’

‘빨랑빨랑 빠이빠이 하고, 냉큼 들어와. 디리 까져서 놀다 올 생각 말고……’

‘네…’

난 다음 날, 조형사 없이 실종자에 관한 자료를 뒤지고 있었다.

‘따르릉’

‘네, 강력 3반 임성…….너…….조형사, 아냐? 이거 무슨 번호야?......응……..공항?...근데?...응….너 사람 됐다! 알았어. 갈께.’

‘뭐야?’

‘네, 조형산 데여, 일 하러 들어오겠다는 데여?’

‘근데, 왜?’

‘공항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리저리 뒤치다가, 발목을 접질러서 꼼짝달싹을 못한다 네요?’

‘그래서, 모시러 오라구? 하여튼, 꼭 일 못하는 것들이, 다쳐서 들어와 유세 부려요. 얼릉 갔다와. 오는 길에 국과수에 들려서리, 또 보고할 껀덕지 있나 알아보고…..’

차 문을 열기 전에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구멍에 집어 넣는데, 차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어? 누가 타다 왔나? 차에 올라 시동을 켜기 전, 나는 더운 날씨로 인해 한증막처럼 후끈 해진 차 안의 더운 김을 빼려고 유리창을 모두 열어 놓은 채, 공회전을 시켰다. 차가 출발하고 두 번째 신호등 인가에서 차가 멈추어 섰을 때, 나는 오랜만에 얼굴이나 살펴 보자는 의미에서 운전석 위에 있는 가리개를 펼쳤다. 풀럭풀럭 하면서 운전대로 떨어지는 노란 메모지…무어지?

‘재봉틀이 찾고 싶으시지 않으십니까?

-디자이너 공손찬-‘

누구지? 하는 의문과 함께 나는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중앙선을 획 돌아 차를 꺾으면서, 나는 핸폰을 집어 들었다. 수신자가 나오건 말건,

‘조형사, 이 메시지 듣는 대로 나한테 빨랑 전화 해. 범인이 모습을 드러냈다구. 나 지금 범인의 사무실로 가는 중이야. 영양탕 먹을 때, 기억나냐? 패션쇼에서 커튼 콜 받던, 그 늙은 디자이너 쇄끼, 그 씨벌 넘이 범인이야.’

나는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그 메모지의 하단에는 주소가 적혀 있었고, 나는 시간이 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차피 벌어진 범인과 나와의 머리 싸움…..이 쯤에서 질 수는 없었다.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도로에서 사이렌을 울려가면서, 차들을 헤치며 가까스로 도착한 그 곳은, 정작 그의 사무실은 아니었다. 다른 이름으로 되어 있는 브랜드 샵의 2층이 그가 가르쳐 준 주소였다.

‘실례합니다.’

‘손님, 무얼 도와 드릴까요?’

‘손님은 아니고, 경찰입니다. 디자이너 공손찬 씨를 찾는데여…..’

‘김양아, 그 분, 2층으로 모셔라.’

주인으로 보이는 지긋한 나이의 여인이 나를 불러 세웠고, 2층으로 나를 인도해 올라갔다. 호화로운 실내 장식과 어울리게 2층 또한 널찍한 형태의 사치스런 내장재로 꾸며진, 휴게실이자, 작업실의 형태……하지만 그런 것을 즐기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우선 앉으시져.’

‘앉을 새가 없습니다. 공손찬씨 라고 여기 계시는 걸로 알았는데, 지금 어디 있습니까?’

‘급하신 것 같은데, 그럼…..전해달라시는 물건부터 드려야겠네요. 잠시만 기둘리세여. 이곳은 제 작업실인데, 선생님께서 귀국 발표회를 여시는 동안, 잠시 내 드렸지요. 따로 작업실을 빌리기도 그렇다고 하셔서…….좀 까다로우시져, 예전에 저도 유학할 당시, 도움도 많이 받고 해서…….이젠 나이도 있으셔서 완전히 귀국하셔도 될 텐데, 아직까지도 정력적으로 일 하시져.’

‘물건 이라녀?’

‘이거요. 경찰에서 자기를 분명히 찾아 올 텐데, 이걸 꼭 전해주라고 당부하셔서…..무겁기는….아휴, 제가 들기는 뭐하고, 이리 와서 살펴 보실래요?’

내가 다가간 곳에는 특수한 높이로 제작된 다이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 이었다. 겉은 보자기로 싸여 있어서 형태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 물건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만 있자,

‘급하시다면서…’

그 여인이 직접 보자기를 풀었다. 그건 재봉틀 이었다. 색을 들이지도 않았는데, 거무틔틔한 본연의 색을 유지하고 있는 흑단재질의 모양새 위에 고풍스런 자태로 올라 앉아 있는 재봉틀…..이제까지 내가 찾고 있던 바로 그것 이었다.

‘어머님의 유품이라고 하시면서 애지중지 하시던 거죠. 평생 패션밖에 모르시던 분 이었는데, 모친의 간첩단 연루로 인해, 사상이 불순하다든가 뭐라든가 하는 되도 않는 이유로 다 늙어 가실 때까지 고국에 들어오질 못하셨는데, 얼마 전에 화해와 용서의 의미라며, 거들 먹 대던 정부가, 선심차원의 비자 발급을 했져. 그 동안 외국에서 신세를 많이도 졌던 우리 후배들이 자리를 마련해서, 선생님의 귀국을 축하 드리는 의미에서 패션쇼를 열어 드렸습니다. 이 재봉틀은 모친께서 돌아가신 후에 제가 쭉 이제까지 보관해 오던 거구요. 멀리 떨어져 평생을 사셨지만, 임종을 보질 못하셔서 그런지,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랑, 사랑이 각별 하셨어여. 보실래요? 이 부분….’

그 여인이 가리키던 부분에는 잘 보이진 않았지만, 칼로 판 자국이 보였고, 유달리 그 부분은 다른 나무와 다르게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글씨가 엉망이죠? 선생님께서 어렸을 적에, 손을 베어 가면서까지 그 단단한 나무에 새겨 넣은 글이라고 하시대요. 엄마! 사랑해요……아마도 모친께서는 이 재봉틀로 고단한 삶을 이어나가실 적 마다, 아드님의 그 글귀를 쓰다듬으시면서 이겨 내셨던가 봐요. 다른 곳과 다르게 윤기가 넘치는 걸 보면……’

‘그 디자이너 양반, 어디 계쇼?’

‘오늘 출국 하세요. 패션쇼 끝나고 쉬지도 않으시고 부득불 가시겠다고 해서…..다신 안 돌아 오실 것처럼 말씀 하셨거덩요. 지금쯤 공항에 계시겠네. 전화 해 드려요? 아직 반납을 안 하셨나 모르겠네. 출국하시면서 임대한 핸폰 꼭 반납하시고 가셔야 허는데…잠시만 기다리세여.’

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눈 앞에 놓여진 먹이를 놓친 승냥이 같이, 나는 으르렁 대고 있었고……..

‘됐어요, 연결되는 걸 보니, 아직 반납하지 않으신 모양 이내요….네…..누구? 응, 미카엘 이구나? 선생님 아직 안 떠나셨지…..응…..고맙긴……그리고, 누가 찾아 오셨거덩? 선생님을 찾으시는데, 경찰이라고 하셔……그래,…….받아 보시래요.’

나는 수화기를 건네 받았다.

‘여보세요? 저 실례지만,….너…….너…..너?……그럼 네가?’

나는 온 전신을 치고 달리는 식은 땀에 두 다리가 다 풀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바로 조형사 였다.

‘놀라셨죠? 저 조형사에요. 선배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저 오늘 아버님이랑 같이 출국 합니다. 마지막까지 어찌 할 바를 몰라, 종국에는 아버님의 손에 수갑을 채울까도 생각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질 않더군요.’

‘넌, 성이 틀리잖아?’

‘어렸을 적에, 한국으로 돌아가실 영사관의 어느 분께 절절히 애원 하셔서, 현지에서 입양 시키셨다나 봐요.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너라도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며 평소에 말씀 하시던 아버님을 찾아 뵈러 가끔 출국해서 찾아뵙긴 했죠. 죄송합니다. 이런 꼴을 보여 드려서…..그래도 보살펴 주신 은혜도 있고 해서,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았는데, 공교롭게도 일이 이렇게 꼬였네요. 출발하기까지 모르셨어야 했는데………, 세상에 비밀은 없는 모양이죠?’

‘너 이쇄끼……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당장 가서….’

‘흥분하지 마세요. 비행기가 조금 있으면 떠요. 전화기 배터리도 다 되가니, 어서 반납하고 게이트로 들어가야겠네요. 출국금지 조치를 신청하시려면 좀 늦은 감이 드네요. 아무튼 건강 하세요. 다시 뵐 수 있을런지…..아마 불가능 하겠죠? 총이랑, 신분증은 책상 서랍에 사직서랑 함께 넣어 두었습니다. 수갑은 어찌될 지 몰라 갖고 왔는데, 기념이라 생각하시고, 그냥 주시죠, 뭐. 그 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안녕히 계십시오…참, 차 안에 제가 테이프 넣어 놓고 왔는데, 잊지 말고 들어 보세요, 그럼……..’

시간적으로 그 두 부자를 이 상황에서 붙잡아 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 분명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 무거운 재봉틀을 낑낑대며, 차 안으로 들고 왔다. 안 봐도, 열씸히 닦긴 했을 것이고, 혈흔 반응 검사를 하면, 분명히 드러날 것이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진 않았다. 누가 집어 넣어 놓았는지, 차 안의 카세트에는 테이프 하나가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처럼 끼워져 있었으며, 나는 시동을 걸면서 테이프를 밀어 넣었다. 테이프 에서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 어차피 놓쳐 버린 그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돌아가려고 깜빡이를 켜는 도중에, 음악이 서서히 끊어 지면서, 어떤 사람의 헛기침이 들렸다. 누구지?

‘어험….쿨럭…..쿨럭…..
어 이거, 죄송합니다. 이렇게 목소리로만 인사를 전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뿐이군요.
지금 차를 몰고 계시는 분, 임형사님 이시죠?
저, 선생님께 소포를 보낸 사람, 미카엘 아니, 조형사 아비 되는 사람 입니다.’

나는 하마터면 앞차를 받을 뻔 했다. 너무 놀라, 차를 몰 수도 없어서 비상등을 켜고 차를 길가 쪽으로 세운 채로 나는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용케도, 제 주변의 형태를 따라서 오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마지막으로 소식 전합니다.
밝혀내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에 따라잡으실 수 있었는지….
한국의 수사력도 이제는 가히 세계적 수준이지 싶습니다.
국과수의 신박사란 분도 꽤 대단한 분이시더군요.’

그는 그 간의 나의 행적에 대해서 아들인 조형사에게 들어 잘 알고 있는듯한 말투였다.

‘선생님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드랬습니다. 오랜 세월, 외국에서 생활해 오다가
이제야 한국에 돌아와 보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 있더군요. 오히려, 내가 태어나
자랐던 고국이 남의 나라처럼 느껴졌다면 좀 이해가 되시려는지요?’

약간은 어눌한 말투에서 그가 오랜 세월, 한국을 떠나 있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아시는 것처럼, 제가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네 사람을 죽이도록 사주한 것은 분명히 접니다. 다 늙은 노인들을 죽여서 무슨 영화를 보겠느냐고 하시겠지만, 저는 저 나름대로의 의지로 이 일을 해 왔음을 알려 드리려 합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경시하는 행위를 저지른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은, 저에게도 이제서야 입을 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요. 다 말씀 드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번잡스러움도 있어서, 떠나가는 길에 몇 말씀 드릴까 합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르고, 수사망이 좁혀오자, 튈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보다, 자기 손에 피는 묻히기 싫어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목숨은 너무나 가벼이 여긴다는 점이 나를 분노케 하고 있었고……

‘그러니까……..때는 바야흐로 625 사변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의 어머님께서는 한 남자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계셨죠. 순진한 어머님은 사상도 상관없었고,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애초에 관심도 없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달랐지요. 이른바, 속까지 빨간 빨갱이였습니다. 수치스럽게도 저에게는 아버지였지만 말입니다. 사변이 터지기 전, 남한에서는 대대적인 간첩 색출 작전으로 인해, 사상적으로 붉게 물들어 있던 그 남자를, 기어이 전쟁 준비로 광분하던 북으로 도망치게 했고, 어머님은 뱃속에 저를 가진 채로 그 남자와 생이별을 하게 되신 것이지요.’

말소리가 차츰 쉬어 가며, 간간히 끊어지는 것은 범인의 감정이 예전 삶의 회고로 인해 그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변이 터지고, 어머님은 부른 배를 무릅쓰고, 남으로, 남으로, 피난 길에 오르셨답니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무자비 하게 하늘에서 쏟아지는 기총 소사와 굶주림 속에서도 오직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 가셨을 겝니다. 부산에 가까스로 도착해서 어머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하데요. 가까스로 들어간 곳이, 미군들이 입다 버린 폐군복을 물을 들이고, 수선을 해서 내다 파는 일이었는데, 워낙 타고난 손재주에다, 깔끔한 뒷손질에 어머님께서는 그런대로 자리를 잡으셨답니다. 그래서 장만하셨던 것이 바로 그 자들의 좇대가리를 벗겨낸 뒤에, 제 손으로 박음질을 한 그 재봉틀 이었습니다. 그 재봉틀은 제가 어렸을 적부터 자장가처럼 들어오던 그 소리의 주인공 이었지요. 우리와 가난을 함께 했고, 어머님의 고단함과 외로움마저도 함께 했던, 우리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옷감을 매만지던 것을 보고 자란 저인지라. 유달리 의상에 관심도 많았을뿐더러, 외국 유학이라는 획기적인 계기를 맞이하여 저는 꿈을 펼쳐 보려는 욕망에 이끌려, 젊은 나이에 고국을 등지게 되었지요.’

그 사정을 들으면서도 나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의문은 그렇게나 긴 세월, 고국을 떠나 있었음에 어째서 그런 천인 공노할 살인을 저질렀는가 하는 점이었다.

‘어머님의 고생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저 이기에, 도움 없이 밀어 부쳤던 외국에서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가운데 시작되었지요. 말이 좋아 패션 공부지, 옷 본을 뜰, 간지 한 장 제대로 살 돈이 없던 시절 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어머님께서는 틈틈이 모으신 귀한 돈을 보내셨고, 저는 근근히 그 돈에 감사해 하면서 공부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전후 국가 재건과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저의 열망은 그 방향타를 상실하기 시작했지요. 좀더 허리띠를 졸라 매면서 잘 살아 보자는 시기에, 패션이라고 하는 사치성 문물을 들여 놓으려는 벌레 취급을 받기 싫어서 였는지, 저는 그대로 그곳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이미 고국은 저를 낳아준 모태가 아니었고, 저란 사람도 국적이 모호한 회색분자처럼 외국을 떠돌아 다녔지요. 그것이 지금까지의 저를 만든 세월 이었습니다. 아직도 궁금하시겠지요? 제가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그는 이미 만들어 녹음을 해둔 테이프에서 조차 나의 심중을 환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머님으로부터 연락이 끊어지고, 급한 마음에 고국으로 돌아가려다 대사관의 비자발급 거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것이 제가 칼을 갈게 된 원인 이었습니다. 이유가 뭐 사회불안을 조작할 사유가 충분하다, 뭐 그런 얘기 였지요. 그 당시 저는 현지의 한국 동포와 갓 결혼을 한 상태였고, 고국의 여권은 이미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때 였습니다. 주변의 지인과 가까스로 선이 닿아 알게 된 사실은 바로 어머님의 간첩 혐의였지요. 그렇게 착하고, 법이 없이도 살 거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으시던 분이, 나라를 팔아먹는 간첩이었다니……어머님은 아무런 항변도 안 하시고, 스스로 조용히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언으로 남기셨던 말씀은 법관들을 향한 간절한 애원이었다고도 했지요……간첩단의 수괴들은 이미 어디론가 튀어버린 지, 오래 였건만, 그 사건을 반공이라는 허울을 내세우면서, 정권유지에 이용하려는 정부의 펜대에 휘몰려, 애꿎은 어머님 만이 온 누명을 다 뒤집어 쓰시고 체포된 것이지요. 빨갱이들로부터 돈 한푼 받아 보신적 없고, 나라를 위해 해꼬지 한번 해본 일이 없던 분이 졸지에 간첩단의 수괴로 둔갑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님은 모든 죄를 인정하고 받아 들이셨다고 합니다. 자신이 불어버리면, 평생 만날 수도 없을 거라고 여기던 남편을 해하는 길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무덤에 찾아와 술이라도 한잔 따라줄 사람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셨더랍니다. 자신은 빨갱이라고 하든, 뭐라고 불러도 좋으니, 내 자식에게 만큼은 그 굴레를 제발, 제발 씌우지 말아달라는 애끓는 절규는, 비공개로 진행된 재판정에 모인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끝끝내 수갑과 포승에 묶여 질질 끌려 가면서도 재판장님,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발 우리 아이만은 살려 주세요 라며, 우셨다고 했지요…….그렇게……전해…….들었습니다.’

목소리가 오래도록 끊겨 들리질 않고 있었다. 잠시 긴 침묵이 흐르고, 가다듬어진 목소리로 테이프는 계속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저와 어머님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외국에 살면서 거의 미친갱이 처럼 반정부 활동에 나서기도 했고….그로 인해 저에게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입국 부적격자 판정이 내려졌고, 비자 발급도 역시 거부 되었지요. 어머님의 산소도 찾아 뵐 수가 없었고, 불효의 끝을 보던 저란 인간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과연 어머님께서 어찌하시어, 간첩의 죄를 뒤집어 쓰시게 되었는가를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동안, 그것도 외국에 앉아서 베일에 가려진 그 일들을 알아낸다는 것은 무지막지한 시간과 돈을 소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뒤 돌아 설 수 없었지요. 그래서 기어이 알게 된 것이 바로 그 네 사람의 원흉들….., 간첩단 사건 이후에 도망쳤어도, 번듯이 살아남아, 남한 사람 행세를 하며 살아온 그 놈들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란 작자가 포함되어 있는……’

난 그 순간, 테이프를 잠시 멈추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 그 지경까지?......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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