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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05 590회 0건
사팔뜨기-사팔뜨기-



친구들과 만나는 중요한 이유의 한가지는 바로 입 청소의 의무감 때문 이기도 했다. 누군가 그랬던가 가시가 돋아난다고……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곰팡이가 피는 것 같은 느낌은 분명했다. 이제는 다들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대학 동창들…..누구는 졸업도 하기 전에, 홀랑 시집을 간 년이 있는가 하면, 그 쭉빵의 몸매가 아까워서 그러는지,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이 해대는 년도 있었다. 난 그 중에서도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케이스의 하나 이긴 했다.



‘어머, 어머….얘 너 젖꼭지 보담 크다 얘!’



‘너 내 젖꼭지 진짜루 봤니?’



‘너 대일밴드 붙이는 거 깜빡 잊고 학교 오면, 온통 남자들이 사팔뜨기 되는 거, 아직 몰랐니?’



친구들은 유달리 도드라지게 톡 튀어 나오는 내 젖꼭지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함이 들어 오는 날, 친구들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패물에 박힌 보석을 보고, 그렇게 주어 섬겼었다. 중매이긴 했어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다고 친구들은 입을 모았고, 역시 여자는 때깔이 받쳐줘야 앞 길이 열린다고들 했다.



‘너 성준씨랑….했지?...그치? 네 요년! 바른 말을 할 때 까정, 내 심히 네 젖꼭지를 다스릴 것이야!’



‘아니, 뭐…..’



‘몇 번이나?’



‘얘는 뭘 그런 걸 다 묻고…너그들도 결혼 해 봐. 그럼 알 테니…..’



‘혹시 너, 속도 위반 한 거 아니니?’



‘요즘은 그 속도 위반도 트렌드란 거 모르니?’



‘너 그럼, 임신?’



‘아니야. 그건 아니구….뭐 그렇다는 거지 뭐.’



친구들은 입방아 찧기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게 천성인 것처럼 알고 살아가는 듯싶었다. 이젠, 누구 눈치를 봐야 하는 학창 시절도 아니어서 그런지, 모이기만 하면 그렇고 그런 얘기로 온 시간을 다 보냈다.



‘니 남편은 어떠니? 우리 그이는 요즈음 개점휴업이야.’



‘누가 아니래니? 그러니, 허기가 지다 못해, 담을 넘는 거 아니겄슈?’



‘어머, 숙희 요년!……보자보자 하니깐 두루……. 일 냈구나? 그치? 누구야? 뭐 하는 사람 이구?’



만일 예전 같으면, 미친 년, 돌은 년, 니가 사람이냐?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딴 짓거리를 할 수 있느냐 하겠지만, 이제는 그런 마녀 사냥은 이미 한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아직까지 혼자 사는 년들은 의례 그러려니 하고서 잘 들어 주지도 않는 폼이, 마치 노래방에서 기껏 떠밀려 노래 시켜 놓고는, 지들끼리는 딴 짓거리 하는 경우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버젓이 가정을 영위하는 유부녀의 몸으로, 애인을 만든다는 화제는, 이제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언제부텀?’



‘한, 두 달 인가? 석 달인가?’



‘이 년 쫌 봐. 너무 좋아서 세월 가는 것도 잊고 사네. 매친 년…저 얼굴 봐라. 좋아 죽어….’



‘좋긴 좋지. 너희들도 애인 생겨봐. 첨에는 그이 얼굴 쳐다 보다가 찔려서, 똥꾸녕이 찢어지는 것 같더니만, 요즘은 오히려 남편이 좋아 죽어. 왜 그다지도 잘하냐 이거지.’



‘어련 할라구? 애인 이랑 예습에, 진도까지 나가고, 남편이랑 꼬박꼬박 복습 허니, 그 성적이 아니 오르고 배기겠니? 왜? 놈쉐이 하나 더 달고, 야자(야간자율학습)까지 해서 전교 1등 꼭 해 보지? 근데, 니 남편, 눈치가 백 단 인 것 같던데, 어찌 안 걸리고, 여기까지 오셨을까?’



‘예, 그거 완 투 데이에 만들어지는 거 아니다. 초반에 얼마나 지지고 볶았는데….’



애인이 있는 년들은 그런 얘기를 털어 놓으면서, 그 동안 가슴 한 켠에서 푹푹 썩고 있던 스스로의 죄책감을 그런 식으로 덜고 있었고, 없는 년들은 없는 대로, 그 얘기를 들으며, 간접 경험의 흥분에, 얘기를 듣느라, 화장실도 못 가고 빤쭈에 오줌을 지리기 일 쑤 였다.



‘얘, 얘….너무 웃기지 마. 오줌 샌다, 얘…..요즘은 웃기만 해도 이래. 애 낳고, 폐품 다 됐나 봐.’



뇨실금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첫 애를 낳은 애들 중에는 조금만 웃어도 오줌이 실실 샌다는 애들이 있었다.



‘넌 휘트니스 가서 그 운동 안 하니?’



‘뭐?’



‘가랭이 합장!’



애들은 그 말에 또다시 까르르 웃어댄다. 애인이 있다는 년들은, 러닝머신을 빼 먹었으면 빼먹었지, 그 가랭이 사이에 기구를 끼우고, 가운데로 힘을 주어 모으는 운동을 거르는 적은 없다고들 했다.



‘그게 맨 첨에는 속는 셈 치고 했거덩? 초반에 사타구니가 땡기고, 걸을 때 마다 움찔움찔 해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애인이 미쳐 디지는 거야. 좇대가 쫄린다든가, 어쩐다든가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무는데, 와, 자신감 팍 붙데?’



‘그래서?’



‘그래서는, 뭐? 남편에게도 요즘은 열나 사랑 받는다우!’



‘어떤 년은 좋겠네. 학교 다닐 때, 열나 놀아 재낀 게, 시집도 잘 가, 남편 잘 해줘, 능력도 좋아, 애인도 죽여 줘…..근데, 미혜야, 넌 왜 말이 없니? 숙희 년이야, 보지에 불 났으니 애 낳기 싫어서 그런 다지만, 넌 결혼 한지도 꽤 됐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 클리닉에는 가 본 거니?’



‘다 때 되면 들어 서겠지 뭐.’



난 애들의 얘기를 듣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삼신 할매가 시샘을 해야, 애가 빨리 들어 서는데….’



‘얘는 때가 어느 땐데, 왠 미신?’



항상 이야기의 끝에는 나의 신상을 묻는 것으로 끝이 나곤 하는 것이, 점점 부담이 되기는 했다. 내가 하는 얘기로 인해 갑자기 도는 싸한 분위기…..모두 그 천인공노 하다는 불륜의 화제를 개그처럼 가볍게 띄워 갖고 놀다가, 아무런 일탈도 없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내게 화제가 돌아오면, 모두 경직되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항상 느낀다는 것이, 썰렁함을 넘어서서, 이제는 저들의 대화에 내 자신이 짐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다분했기에 말이다.



‘미혜야, 너도 애인이나 하나 가져 보지?’



숙희년의 말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알을 까주겠다는 말로 들렸지만, 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지금도 뭐 별로 불만 없는데 뭘….’



‘야, 이년아? 다 너 같은 줄 아니? 미혜야, 뼈대 있는 집안의 외동 아드님 에게 시집간 몸인데, 너처럼 놀 수 있다니? 들이댈 곳에 들이 대야지, 원…..’



항상 이야기를 꺼내도록 부추기면서도 초장에 막아서는 것은 원영이 였다.



‘숙희년 말, 귀담아 들을 필요 없다. 애인 없다고 죽냐?’



그러나, 생각 같아서는 그런 관계도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생각처럼 제 때에 들어서질 않는 아이도 아이였지만, 항상 가업을 이어가는 남편에게 떨어지는 부담, 그리고, 쉴 새 없는 출장 등으로,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짐으로 해서, 서서히 심리적 공백을 메우어 줄 무언가가 필요해 지는 시점임을, 애써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년 봐라. 우리 만납네 하고, 저, 저 도망치는 꼬라지 하고는….저렇게나 애인이 좋을까? 에이….. 먹고 죽을 값에라도 확 불어 버리고, 우리 쟤랑, 너 죽고 나 살자 한 판 벌리까? 호호호…’



숙희가 우리들 앞에서 전화를 받으며, 황급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혀를 차는 원영이의 지분거림이 귓가에 남았다.



‘그래, 뭐가 그리도 좋길래…..’



‘미혜야, 아까 들고 온 보따리는 뭐래니?’



‘응, 예전에 샀던 옷인데, 고치려고….’



‘왜?’



‘살 때는 잘 맞았는데, 요즈음 굽 높은 게 인기잖아?’



‘너도 그 젊은 애들 신는 아라비안 나이트 구두 샀니? 난 그거 발가락이 좁혀 들어서 신기 정말 그렇드라. 이젠 조금만 걸어도 발이 퉁퉁 부어서…..우리 학교 다닐 때, 그런 신발 신고, 어떻게 창문 넘어서 강의 빼 먹고, 땡땡이 쳤는가 몰라, 그치?’



원영이는 내가 들고 온 쇼핑백 안의 바지를 꺼내 본다.



‘이거, 이거….완전 명품이네..허긴 남편이 찢어지게 잘 나가니…’



‘남편이 잘 나간다고 쇼핑만 하고 살 수 있니? 애도 없고 그러니….’



‘집에서 네가 고치지?’



‘그러고 싶은데, 이게, 바지 단 밑부터, 지퍼가 달려 있어서 마구 잡이로 단을 늘일 수가 없더라구. 그렇다고 이거 고치자고 미싱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그래서 들고 나왔지 뭐.’



‘그래? 나가자, 숙희 년도 도망가고, 할 일도 마땅찮은 차에 잘 됐다. 옷이나 맡기러 가지 뭐.’



난 원영이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옷을 산 곳에 줘야 한다는 나의 아우성도 아랑곳 하질 않고,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근처 시장 통의 구석에 위치한 옷수선 집이었다.



‘얘, 이런 수선 집은 우리 집 근처에도 있어!’



‘얘, 모르는 소리 마라. 요렇게 비싼 옷도, 맡기면 한 시간 내에 해주는 곳 또 있다디? 여기 몰라서 그렇지, 연예인들도 얼마나 온다구? 협찬이라고 해준 옷들이야, 뻔 하잖아? 그러니, 마냥 옷 뒤에 삔 꽂고 나갈 수도 없는 거고…..강짜 부려설랑은 협찬해 준 애들로부터 옷 뜯어 내고 나면, 그 옷 가게에 가서 뻔뻔시럽게 고칠 수 없다잖아? 그래서, 메니저들이 옷을 뭉태기로 들고 오는데, 얼마나 솜씨가 좋으신지, 옆 가게에서 떡볶이 때리는 동안, 다 해주신 다니깐? 지둘려 봐.’



‘아저씨 저 왔어여.’



벌써 그 좁은 가게 안에는 여남은 명의 여자들이 둘러 앉아 있었다. 이런 허름한 시장 통에 올 것 같질 않은 쭉빵의 여자들이 줄줄이 널부러져 있는 그 좁은 구석…



‘내가 뭐랬니? 평소에도 이러니, 주말에는 들어오지도 못해 야…’



‘근데, 왜 말씀이 없으시니?’



‘원래 저러셔. 무뚝뚝하기가 이만 저만 이래야지?’



등을 돌리고, 미싱을 돌리는 그 아저씨라는 사람의 등판이 넓다란 운동장처럼 보이고 있었다. 대개 이런 일은 여자가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반면, 그것도 저렇게 건장한 남자가 앉아서 미싱을 돌린다는 것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털푸덕!’



미싱이 끝났는지, 뒤도 돌아 보질 않고 옆으로 내 던져지는 치마…..빤들거리는 가죽치마 였는데, 어디를 고쳤는지도 모르게 솜씨가 꽤 빼어난 것이 멀리서도 보이고 있었다.



‘어여 입어 봐.’



맨 앞에서 츄리닝 바람에 앉아 있던 여자가 껌을 짝짝 씹으면서, 그 아저씨라는 사람 곁으로 다가가더니만,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것도 아랑곳 하질 않고서, 츄리닝을 아래로 확 까 내렸다. 난 깜짝 놀랐건만,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눈길 한 번 주질 않고 있었다.



‘에이그, 던지긴 왜 던지시남? 그냥 주셔도 될 걸……’



그 여자의 다리는 군살이 하나도 없었으며, 같은 여자가 봐도 무릎이 보이지도 않는 매끈한 인형 다리의 소유자 였다. 다리도 겨우 끼워 넣는 것 같이, 그 馨苧?빡 끼는 것 같은 가죽 치마를 아래로부터 끼워 올리는데, 누가 봐도 숨이 막힐 정도로 조여대는 것이 보여지고 있어서 갑갑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그런 스타일이 못내 자랑스러운지, 기어이 치마를 제 위치로 끼워 올렸다. 그리고, 드르륵 대는 지퍼 올리는 소리….



‘어머, 내 이럴 줄 알았쓰……아저씨 아니고는 이거 고쳐줄 사람, 없다니깐여?’



빙그르르 돌면서 한껏 폼을 잡는데, 난 그 굴곡의 아름다움에 입이 벌려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얘, 미혜야, 파리 들어갈라. 뭘 그리 놀라나?’



‘응, 아니야….’



난 물건 훔치다 들킨 사람처럼 입을 다물었지만, 남들 앞에서 저렇게 팬티 차림으로 치마를 껴 입는 것은 그 자신 있는 체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내, 다른 옷을 수선하면서, 미싱을 돌리던 그 소리가 잠시 멎는 것 같더니만, 오른 손을 옆으로 쑥 뻗어 그 여자의 매끈한 다리를 찰싹 후려치는 것이었다.



‘작작 쫌 돌려라. 응? 너 애 떼는 것도 벌받을 짓인 줄 알고 있지? 그 치마 입고 쪽바리들얼마나 많이 후려먹었는지는 몰라도…..피임이나 하던지….기어이 째진 가죽옷을 왜 들고 와서 쐬지퍼로 바꿔 달래? 니 자궁은 쇠떵어리 래니?’



‘아이, 아찌도…..담부턴 조심 할께여.’



난 그 아저씨와 그 여자가 그리도 가까운 사이인가 싶어, 눈을 씻고 다시 한번 살펴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등을 대고 있어, 난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차례의 여자들이 서넛은 되고 있었던 데다가, 무작정 다가가 내 옷을 먼저 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었고…..



‘민자야!’



‘예!’



‘옷 다 됐다.’



‘벌써여?’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의 양쪽 품을 줄여 놓은 듯한 옷을 받아 든 여자는 수수한 얼굴의 키가 작은 여자였다.



‘그거 협찬으로 들어온 거 아니지?’



‘……..’



‘너 조심해야 될거다. 술 먹는 자리에는 그 좇겉은 년이랑 같이 가지 말고…..’



‘그래도 명색이 코딘데…..’



‘아니, 뭐 말라 비틀어진, 코디? 코디가 무신 꼬뚜레 라고 하디? 줄창 꼬 꿰어서 어디까지 데불고 다닐 껀데?’



‘네……그럴께여.’



난 옷을 건네 주면서, 수선을 의뢰한 사람들에게 한마디씩 날리는 그 사람의 존재가 점점 의심이 가면서 한편으로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얘, 쫄지 마라. 내가 예전에 학생 때 입던 청바지가 애 낳고 쫄려서, 허리 쫌 늘리려고 왔었는데, 글쎄, 옷을 손에 턱 하니 잡으시면서 허시는 말씀이….앞으로 평생 살 빠질 일 없으니 그냥 갖고 가라는 거야. 내가 막 화를 냈잖니?’



‘그래서?’



‘막무가내로 해달라고 하니깐, ‘



‘하니깐?’



‘우리 그이가 내 응댕이가 퍼지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아느냐고 하드라고…..그래서 그 날로 당장 저녁에 그이한테 물어 봤지. 당신 정말 그러냐고…..그랬더니 글쎄? 그래서 애 낳고 줄창 뒤로 박는 거 몰랐느냐고 그러더라구. 난 패대기질 치는 것처럼, 맨날 뒤에 들러 붙어, 응댕이 철썩철썩 쳐 대면서 개치기 하는 이유를 몰랐거덩. 신기하지?’



‘점장인가?’



‘아니!’



‘그럼?’



‘아저씬 촉망 받는 디자이너 셨대요. 빈티 난데나, 뭐래나 그런 거 있잖아?’



‘빈티지 룩(Vintage Look: 오래되어 낡아 보이는 듯한 스타일의 패션부류) 말이야?’



‘응, 암튼…..그랬는데, 어쩐 일인지, 모두 팽개치고, 이 시장 바닥에 들어와 계시게 되었다고 하더라구. 저기 벽에 걸려 있는 옷 보이지?’



‘응.’



‘죽으면 입을 거라고 손수 만드신 옷이래. 신기하지?’



난 들어올 때 모르고 있었던 벽에 걸린 삼베 옷을 보게 되었다. 그 아저씨는 기인 기질이 다분한 사람처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저런 얘기를 하는 도중에, 우리의 차례가 점점 가까워 지고 있었고, 난 시계를 자꾸만 쳐다 보게 되는, 나 자신을 추스리기에 바빴다.



‘왜, 미혜야, 약속 있니?’



‘아니, 쫌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거 같아서…..’



‘쫌 기둘려…..다 됐나부다. 저 여자,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니? TV에서 봤나? 아님, 미장원에서 본 잡지에 나왔던 것도 같고…..체격 하나는 정말 죽이네…..어머…어머….’



나나, 원영이는 그 아저씨의 행동에 다시 한번 놀라고 있었다. 팔을 쑥 뻗어, 방금 갈아 입은 탱크탑 위로, 그 여자 손님의 젖을 뭉텅 쥐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 얼굴 뜯어 고치는 것도 모자라, 젖탱이에 바람까지 집어 넣냐? 너, 그 젖탱이 때문에 신세 조질 날 있을 게다. 어여 바람 빼고 얌전한 블라우스나 입고 댕기면 좀 좋아? 니 년 젖탱이에만 눈길 가는 줄 알고 있다간 큰 코 다친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그렇게 부풀리다가, 니년 보지에도 바람 차기 시작하면, 그 바람, 오지기리 빼기 어려울 게다.’



그녀는 뒤에 기다리고 있는 나와 원영이가 들었을 그 얘기들 때문에, 얼굴이 뻘개져서 돈을 건네기 무섭게 가게를 빠져나가 버렸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난 쇼핑백을 그 아저씨 앞으로 내밀었다.



‘어딜 고칠 건데?’



‘저. 높은 구두를 신으니까 달랑 올라가 붙어서 말이죠. 단을 내고 싶은데, 지퍼가 있어서 갖고 왔거…….든요.’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수선 부위를 설명했다. 그제서야 천천히 등을 돌리고, 우리 쪽을 향하는 그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난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저씨는 사팔뜨기였기 때문이었다.



‘입어 봐.’



‘땡….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잠깐만여….. 미혜야, 나 밖에서 전화 쫌 받고 올께.’



가게 안에 나와 그 아저씨만을 남기고, 나가버린 원영이가 야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 어쩌기야 할라구?



‘뭇 생긴 년이 응댕이는 이뻐 설랑은, 남편이 죽고 못살지….저것도 복은 복이야. 아마 남편이 전화 한걸 거야.’



‘………’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하고, 옷도 갈아입질 못한 채,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왜, 부끄러워서? 그럼 바지는 왜 들고 나왔어?’



‘네?’



‘바지 수선 값, 비싸게 받을 테니 알아서 해’



‘왜요?’



‘글쎄, 그건 니 년이 더 잘 알겠지, 안 그래?’



‘아니, 왜 욕지기 세여? 첨 보는 사람한테…..보자보자 하니깐…...정말…..내 참, 기가 막혀서…..’



‘비싸게 부르든 말든, 그 돈 니 서방이 낼 거 아니잖아?’



난 숨이 헉 하고 멎는 줄 알았다. 갑자기 등에서 식은 땀이 솟으면서, 턱이 덜덜 떨려오고 있는 것조차 느낄 수 없었다.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싱대에 올려 놓고, 바지 단 밑에 붙어 있는 지퍼를 날카로운 면도칼로 순식간에 떨어내는 그 솜씨…그리고는 손이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속도로, 단의 안쪽에 꿰매어 있는 투명 실을 걷어냈다.



‘니 년 구두굽이, 옛날 것 보다 2센치는 높지?’



‘네?…..네…….그게’



‘단을 다 내고 나면, 다리가 더 길어 보이겠구만. 그 다리랑 허리에 반한 놈이 또 느글대면서 빨아자실 거고…..그 길고 긴 다리에, 덜렁대는 음탕한 젖꼭지…..허연 살결에, 털도 별로 없는 니년 같은 개보지는 내 생전 몇 번 만날 수도 없는데….’



‘아니, 어디서 그런 쌍욕을……’



‘친구 들어 올까 봐, 겁나지? 왜 그렇게 땀은 흘리시나?’



그 아저씨는 또다시 아까처럼 등을 대고 앉아, 무심하게 미싱을 돌리기 시작했다. 원영이의 통화가 길어지는 것이, 도리어 안심이 되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니 년, 친구 보이지? 가진 것 없어도, 뭐 하나 욕심 내는 것 없이, 남편 하나 바라보면서, 저렇게 웃고 떠들고….., 속없이 보여도, 저게 사람 사는 거이야. 알았어? 적어도 니 년 남편되는 자슥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지, 암!’



‘뭘 안다고 그러세여? 저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런 씨부럴 년을 봤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에잉…..여기 있다. 다 됐으니, 꺼져. 다신 발걸음만 했단 봐라. 겉으로 요조숙녀 임네 하면서, 시침 뻑 까고 있으면, 세상이 다 그런 줄 알고 있는 줄 아는 뻔뻔스런 년! 나 같은 사팔뜨기 눈깔에도 보이는 저 어린 것들이 뵈지도 않느냐 이 말이야? 못된 년따우…..아무리 돈이 좋기로서니, 서방 놔두고, 시아버지 좇대가리에 들러 붙어? 양심은 있었나 보네. 끝끝내 족족 배는 대로 떼어내기 바빴으니…왜 내가 틀린 말 했나? 지금도 애타게 니 년 바지 가랭이 붙들고 있는, 그 눈도 못 뜨고, 뱃속에서 칼질에, 난도질 당해서 세상 밖으로 끌려 나온 핏덩이들이 기억 안 나느냐고? 아무리 좋은 옷에, 보석에, 화장발로 니 년을 가릴 수 있을 거라 해도, 세상은 그렇질 않지. 에라이, 벼락 맞아 뒤질년 따우!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지…..니 년, 계속 그 따위로 시아버지 좇몽둥이에, 돈지랄에 빠져서 살다가는, 언젠가 니가 그렇게 믿고 안심하던 니 서방 앞에서, 그 천하에 몹쓸 그 상열의 쇄끼랑 같이, 복상사 해서 뒤질 줄 알고 있어라, 이 년아!’



하얗게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가게를 나오는 나를 부축한 원영이는, 밖에서 전화를 받다 말고, 기겁을 하면서 나를 부축했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는 나의 가슴속의 두려움을 붙들어 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얘, 미혜야! 어머머…어머머…..너….너….피…피…피야!......너 멘스 하니?.....안 되겠다. 어디라도 들어 가야지….패드라도 갖고 왔니? ’



다리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저께 병원에서 애를 지우고, 시아버지가 마련해 준 특실에서 편히 쉬어보려 했지만, 급하게 출장에서 돌아온다는 남편의 일정을 시아버지에게 전해 듣고, 난 집으로 돌아와 평상시처럼 행동 해야만 했다. 재수 대가리 없는 새끼 같으니라구…..달력에 표시되어 있던 친구들과의 약속도, 아픈 몸이었지만, 그 새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나가지 않을 수도 없었고……아마도 수없이 긁어 댔던 자궁의 어느 구석쯤이 아물지 않고, 피가 흘렀던 모양이다. 순진한 원영이 년, 그것도 모르고…….



‘응, 난데?….나 피가 막 나서 그러는데, 차 쫌 보내 줘잉…….응…응….나 무지 아포…..호호 해줄꺼징? 응..여기가 어디냐면….’



‘아효 징한 년! 결혼 하고도 지 남편에게 저렇게 애교 떠는 년은 보다 첨 보네.’



난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내 보지에서 흐르는 피라도 빨아 자실 남자는 아빠 뿐이지롱. 그 까이꺼, 피 쯤이야. 똥오줌도 받아 자시는 양반인데….’



하지만, 아직도 등골이 서늘한, 그 수선집 아저씨의 매서운 분위기는 찝찝하게 가슴을 내리 누르고 있었다. 사팔뜨기?…..좇 같은 새끼가 어디서 설레발 치고 지랄이야? 세상사,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좇대가리랑 한 세상 부티 나게 엉겨 살면 그 뿐이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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